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네 윈 (문단 편집) == 기타 == * 네 윈의 출생일이 정확히 언제인지는 파악이 불가능하다, 어느 책에서는 네 윈이 1911년 5월 24일에 태어났다고 적혀 있으며, 마웅마웅 박사는 그의 저서 '버마와 네 윈 장군'이란 책에서 네 윈의 출생일을 1911년 5월 14일이라고 적어 놓았다. 그런데 정작 버마어로 쓰인 '30인의 동지'라는 책에서는 네 윈의 생일을 1910년 7월 10일이라고 적고 있다. * 네 윈은 하이난섬에서 군사훈련을 받으면서 고향 이름에서 따온 '슈 마웅(Shu Maung)'이라는 가명을 사용하기도 했다. 사실 네 윈은 자신의 행운의 숫자를 9라고 믿었는데[* 실제로, 미얀마 사람들은 9를 가장 좋아하는데 숫자 9는 어떤 수를 곱하더라도 그 결과의 합은 반드시 9가 되기 때문이라고 한다] 네 윈은 8의 값을 갖고 태어났기 때문에 이름도 그에 맞춰 슈 마웅(Shu Maung)이라고 지었지만, 이게 군인에게 좋지 않다고 해서 이름을 네 윈으로 바꿨다고 한다. 네윈은 숫자 9의 유익한 속성이 자신을 90년을 살 수 있게 해줄 것이라고 믿었는데, 실제로 네 윈은 91~92세까지 살았으니 완벽히 소망을 이룬 셈이다. * 통치 기간에 미신을 신봉했기에 불운을 피하기 위한 고유 의식인 '야다야(Yadaya)'를 자주 행했는데, 실제로 네 윈은 그의 점쟁이가 그에게 유혈 사태가 있을 수 있다고 경고했을 때 거울 앞에 서서 피를 모방하기 위해 고기를 짓밟았고, 암살 시도의 가능성을 피하기 위해 총으로 거울을 쏘기도 했다. * 미얀마 국민들 앞에 서는 공개석상에는 1년에 고작 2번 정도만 나왔다고 한다. 암살을 두려워해서였다는 말이 있으나 기자회견에서도 인터뷰에 응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면 매스컴을 싫어해서였을 가능성이 높다. * 6번이나 결혼했는데 같은 여성 2명과 재혼을 반복하기도 하며 아들 6명과 딸 2명을 낳았다. * 이상우 기자는 <신동아> 1992년 6월호 기사에서 [[전두환]]이 1983년 당시 버마를 [[사회주의]] 국가임에도 해외순방지로 삼은 이유로 '네 윈의 [[섭정]]통치 노하우를 배우기 위해서'라는 주장을 했다. 실제로 이즈음 전두환은 '[[1988년|88년]] 평화적 정권교체 연구'를 은밀히 진행하는 등, 퇴임 후 [[노태우|후계자]]를 [[바지사장]]으로 내세우고 [[상왕|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계속 유지하려는]] 생각을 하고 있었다. 이후 전두환은 그렇게 버마 순방을 강행했다가 [[아웅산 묘소 폭탄 테러]]에 휘말리게 된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